우울증이 오는 이유

2024. 3. 30. 23:53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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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 오는 이유

우울증!

누구나 다 한 번쯤은 우울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이 우울증은 아동기에 어떤 사건의 트라우마 경험으로 이미 심약해진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대상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그 대상이 주던 절대적인 안정에 대한 환상을  잃게 될 때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우울증을 바라보는 시각이 두 가지의 관점이 있는데 묘사적 관점과 정신분석적 관점이 있습니다.

묘사적 관점은 비정상적인 슬픈 기분이 핵심 포인트인데 관찰이 가능하고 다양한 증상들의 집합체입니다. 정신 분석적 관점은 비정상적 슬픈 기분에 있을 바로 그 이유를 추정해 보는 것입니다.

 

우울증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려서가 아니라 자신이었던 바로 그 사람을 잃어버려서입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과거에 나 자신 일 수 있도록 힘을 주던 그 환상을 잃어버려서 슬픈 거지요

유아기 때 전능 환상이 이제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무용지물이라는 쓰라린 환멸로 뒤집어진 결과가 우울증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자기애적 환상이 우울증으로 오는 이유는 감정쇼크가 있는데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배우자의 불륜을 발견, 등등이 있을 수 있으나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라 작고 소소한 일들이 축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땐 알아보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우울한 여인
우울증의 이미지

우울증을 가진 40 후반의 여성예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비교적 사교성도 있어 보였고 가정 형편도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녀는 늦게 결혼을 하여 4학년의 딸과 2학년의 딸 이렇게 두 딸을 가졌습니다.

남편은 사업을 하였고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가 어려워 같이 있는 공간을 싫어하였고 그녀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도 아빠와 같이 있는 것이 무서워 집에 들어가는 것을 힘들다고 호소하였습니다. 막상 사회에 나아오자니 두려움이 있고 남편이랑 함께하는 것이 금전적인 이유였습니다.

 

첫째 아이는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고 둘째 아이는 비교적 밝으며 엄마에게 힘이 되는 언어를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이를 테면 엄마가 힘이 들 땐 나를 "해님아"(별칭)라고 불러 주고 괜찮을 땐 나를 "바다야"( 별칭)라고 불러줘

그러면 내가 엄마가 "해님아"라고 부를 땐 엄마를 도와줄게 라는 언어를 구사했습니다.

그녀에겐 큰 지지자였습니다.

 

그녀를 미술치료와 춤치유를 병행하여 6회기 정도 진행을 했다. 진행 중 발견한 것은 자라는 과정에서 어머니는 오빠에게 모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녀는 어머니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는 딸이었습니다.

가령 시험을 백점을 받아서 기분이 좋아서 엄마에게 말을 했습니다.  "엄마 나 100점 받았어"라고 말하자 어머니의 대답 " 그게 그렇게 기분 좋을 일이야"라는 말이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여기서 감정의 혼란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기뻐할 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과 나는 이렇게 해도 사랑을 못 받는구나! 등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의 경험이 상처를 받는 계기가 생활패턴 전반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색으로 가족을  칠해보자라고 했을 때 아빠는 태양으로 표현을 했고 엄마와 오빠는 그 아래 자주 작은 원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아버지를 그릴 때는 아주 밝아 보였고 힘까지 느껴졌습니다. 사랑을 많이 주었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18 살에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우울증이 어디로부터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입해 보자면 태양 같던 아버지의 존재를 여의고 자기 자신일 수 있게 만들어준 아버지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자 전부를 잃은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오빠와 엄마는 그녀에게 지지자가 되지 못했고 그리고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았습니다.  결혼하고 그녀의 무의식에는 아버지에게서 미처 분화되지 못한 그 사랑을 갈구했으리라 그러나 현실의 남편에게서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더 힘든 삶의 결과가 우울증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자존감이 낮아 자기 자신을 바보 멍청이로 표현했고 이 외에도 모두가 자신을 향해 부정적 단어를 쏟아 냈습니다. 바보 멍청이를 긍정의 언어로 바꾸어 말하게 했을 때 말을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기서 사고를 바꾸어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감이 생길 수 있도록 도와 자존감을 높이며 그녀의 테두리에서 한 단계씩 벗어나 알을 깨고 나아오게 춤 동작을 통하여 임상에 임했습니다.  무력한 자기 자신의 한계에서  두려움이 있더라도 발을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목표로 상담을 진행한 결과 그동안 남편에게 의존하던 그 삶에서 한발 앞으로 나아가 운전을 하며 아이들과의 즐거움의 영역으로 한 발씩 나아가는 긍정의 효과를 낳았습니다.(직접상담사례)

 

우울증의 슬픔은 어떻게 경험되는가? 

우울증 환자는 끊임없이 불평하고 쉽게 감정이 상합니다. 특히 감정에 취약하고 툭하면 화를 내고 남들을 비난합니다. 이 슬픔 뒤에는 분노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사랑하던 이들에 대한 소리 없는 적개심이 불타고 있지요. 그래서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상담자가 그 환자 안에 있는 적개심 속의 증오를 알아내고 그 증오를 상담을 통해 재경험 하고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내담자가 자신 안에 증오가 있음을 인정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여기서 알아 두어야 할 사항이 너무나 착한 사람의 경우 순진한 나머지 타인의 대한 증오를 자기 자신이 잘못하여 슬픈 일이 일어났다고 착각하여 자신을 증오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타인에 대한 증오도 함께 일어납니다.

 

우울증의 특징들

슬픔이 무기력이 되면 우울증 환자는 이유 없이 자주 울게 되고 힘이 빠져 있고 아주 작은 일도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으며 보통의 슬픔과는 달리 우울증의 슬픔은 움직임을 아예 없애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울증 환자들은 이 슬픔이 어디서 오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자신을 해석하려 해도 도무지 설명이 안됩니다. 

알코올 중독은 가면 우울에 속하며 대개 여성 알코올 중독자는 슬퍼서 술을 마시지만 남성은 대개 불안해서 술을 마십니다.  우울증 환자들은 슬프다. 강박적이다. 모든 게 귀찮다. 이 세 가지의 감정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이 세 가지 증상들은 다른 장애를 불러오는데 거대한 피로감, 많이 잣는데도 피곤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일상 활동에서의 느려짐입니다. 

모든 것이 느리고 벅찹니다. 느린 걸음걸이, 느린 사고, 느린 말, 단조로운 목소리,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인지적 측면과 연관되어 있는 집중하기 어려움, 상황예측의 어려움, 결정하기 어려움, 보통의 대화에 주목하기 어려움, 기억장애도 따라와 최근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합니다. 

 

정상적인 슬픔

갑자기 자기 자신이 슬픈 사람은 자기 자신이 왜 슬픈지를 알고 있습니다. 쓰라리고 견디기 힘들지만 차분하고 일시적입니다.

정상적인 슬픈 사람은 불행에 시달리면서도 자신 안에 진동하는 생의 욕망을 느낄 수 있다. 타인 들로부터 물러 나지도 자신을 고립시키지도 않습니다. 외부세계와 교류도 잘하고 개방되어 있으며 도움을 받고 주기도 한다 가족이나 친구는 그가 고통을 더 잘 견디도록 해주는 지지대입니다.

나르시시즘도 발달이 되어 고통을 더 잘 견디기 위해 자신의 일에 몰두합니다. 이때 나르시시즘 즉 자기에 대한 사랑은 위로와 힘을 줍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자존감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울증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합니다. 시간과의 관계에서도 현재가 과거가 활성화되는 순간이자 미래가 예고되는 순간입니다. 현재는 움직임을 계속하는 과거이며 다가오는 미래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울증의 슬픔

우울증 환자가 표현하기 힘들어하는 이 슬픔은 항상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원망에 차있고 지속되며 환자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잘 줄어들지 않습니다.

우울증 환자는 자신이 왜 우울한지를 모릅니다. 사랑의 배신당한 경우라면 우울증 환자는 사람의 배반이 슬픔의 원인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모르고 있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빛나게 해 주던 그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환상을 잃어버려서 슬픈 것입니다. 즉 절대적 사랑에 대한 환상과 완벽한 이상에 대한 환상을 잃어버려서 슬픈 것입니다. 그녀는 배반을 당해서 우울한 것이 아니라 배신을 당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이루는 유아적 환상을 잃어버려서 우울한 것입니다. 

우울증 환자는 소중한 존재가 죽었을 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불공평하다고 느끼며 어디서도 위로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랑에 자신을 개방할 수 없으며 사랑의 능력은 제거된고 맙니다. 이때 병적인 애도는 우울증의 심각한 형태로 가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울증 환자는 자신 안의 더 이상 삶의 욕망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울증 환자는 동반자와 배우자 가족 친구들로부터 멀어지고 고립시킵니다. 고약하며 자신과 함께 사는 사람에게 가학적이며 도움을 제안하면 거절합니다. 우울증 환자와 함께 하는 일은 항상 어렵습니다. 

나르시시즘적인 면에서 자기 자신을 평가절하하는데 고통을 견디고 모든 요청을 피하고 달아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평가 절하하는 것을 만끽하기 위해 자신에게 몰두합니다. 이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이 행동이 자기 자아를 지키고 정신변적인 파탄으로부터도 자신을 구합니다. 우울증 환자의 나르시시즘은 소극적인 자기애인 동시에 정신병에 맞서는 예방차원입니다. 

자존감도 과장된 자존감의 경우 격앙된 나르시시즘으로 우울증이 발명한 상태에서는 자기 증오로 변형되어 소극적 나르시시즘으로 변형됩니다. 

시간과의 관계에서 건강한 사람은 행동함으로 과거를 재 창조하지만 우울증 환자는 과거를 반복하며 현재에 무겁게 눌러앉아 있습니다. 

 

40대 여성의 경우

1차적인 목표 자존감 업과 한 단계의 업그레이드된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었으나 2차적인 목표 깊은 우울 이면에 있는 분노와 유아기적 환상을 깨닫게 하는 단계가 아직 남아있다. 현재 약물 치료와 병행을 하고 있으며 호전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음번엔 "우울증 누가 걸릴 수 있나요?"라는 주제를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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